지난 7월 4일 민주당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처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첫째,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당원과 지지 국민의 의사를 정당이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문제이지, 정당이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는 데서 연유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면 구태여 기초자치선거에만 국한할 이유가 무엇인가? 당원과 지지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의정활동을 잘 할 수 있는 좋은 인재를 책임있게 공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 불신에 기댄 정당무용론 내지는 정당해체론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둘째, 현행 정당공천제로 인해 중앙정치에 지방정치가 예속되어서 지방자치의 기본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진단도 합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 당은 지방정치의 자율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극히 일부의 사례이기는 하나, 지방정치인의 해당행위조차 엄격하게 기율하지 못하고 있는 게 당의 현실이다.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는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기는커녕 중앙당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통제마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새누리당의 예이기는 하나, 우리 당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 패배로 중앙행정권력을 수임하지 못한 지금은 지역적 차원에서나마 당의 노선과 정책을 구현함으로써 그 효과를 지역주민과 국민이 체감토록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공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시비와 부패문제 등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상향식 공천시스템을 확립하고 경선관리를 엄격하게 함으로써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기초선거에서 줄 세우기나 부정부패의 문제가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공천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폐해가 아니라, 지역위원장이 공천권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행사하면서 이를 악용한 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인 상향식 공천시스템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풀뿌리 정치인들의 정당 참여를 약화시켜 거꾸로 지역위원장의 전횡을 더욱 심화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넷째, 정당공천제가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와 결합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어렵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만 하면 갑자기 지역주의가 사라져서 민주당 성향 후보가 영남에서 당선되고 새누리당 성향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되는가?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면 개편하거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또는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는 방안, 지방행정체제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 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이 작동시켜 온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 절차와 장치를 철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록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은 그동안 공천심사 과정을 통해 당이 내세울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해 왔다. 또 현역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통해 수준에 미달하거나 주민 의사에 반하는 지방정치인들을 걸러내 왔다. 그런데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이러한 검증 절차와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자금과 조직 면에서 우세한 지방토호세력들이 득세하거나 현역 정치인이 기득권을 활용해 온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신진․여성․장애인 등 소수세력의 진출이 더욱 힘들어져 지방정치의 심각한 퇴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오랜 논의 끝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론내린 검토위원회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정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이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근본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 또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도 이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당공천제 폐지는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바른 길이 아니다. 사회 저변에 팽만한 정치 불신에 편승해 바른 길을 버리고 쉽고 편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정치의 실종과 정당의 약화이다. 국민의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국민 속에 뿌리박은 정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위기의 본질을 애써 눈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실천을 포기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정당책임정치를 강화하고 지역주의 구도를 해체하기 위한 근본 처방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행 정당공천제도가 지방자치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과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당 지도부는 ‘전 당원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전 당원 투표가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진정한 당원의 의사가 형성되고 수렴될 수 있도록 투표에 앞서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고 밀도있게 진행해야 한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책임정치의 본질은 물론 당의 장래와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인 만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7~8월 하한기 동안 전국 시도당 및 지역위원회 차원의 공식․비공식 회의는 물론 대의원과 당원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형식의 토론회와 공청회를 조직하고, 이 자리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개입과 정치공작사건을 보고하는 한편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거당적 의사결정 로드맵을 세워 실행할 것을 당 지도부에 건의하는 바이다.
2013. 7. 7
첨부파일
20130707-진성준 의원,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문제에 관한 거당적 의사결정 로드맵을 수립-실행하라.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