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이 1,000조 원을 넘었습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빚을 갚는 것이지, 새 통장부터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재원을 묶어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규모는 100조 원에서 150조 원까지 거론됩니다. 액수가 얼마이든 본질은 같습니다. 국회의 견제를 벗어난 정권의 ‘쌈짓돈 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국회를 비켜가는 우회로가 될 우려가 큽니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기금은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최대 30%까지 국회 의결 없이 정부가 자체 변경할 수 있습니다. 계획은 국회 심사를 거치지만, 지출 단계에서는 정부 재량의 여지가 커집니다.
민주당은 “투명하고 내실 있게 집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로 약속할 일이 아닙니다. 100조 원이 넘는 국민의 돈이라면 정부의 선의를 믿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 견제를 법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재정 운용의 순서도 거꾸로입니다.
국가재정법은 초과 조세수입을 국채 상환에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강행규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 의지만 있으면 빚 갚기를 뒤로 미룰 수 있는 구조입니다.
더욱이 정부는 법정 개념인 ‘초과세수’ 대신 법에 없는 ‘추가세수’라는 표현을 앞세워 이를 미래대응기금에 담으려 합니다. 적자성 국가채무는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고, 국민연금 미적립부채 등을 포함해 산출한 광의의 국가부채(D4)는 GDP 대비 181%에 이릅니다.
호황기에 빚을 갚지 않으면 경기가 꺾이는 순간 다시 빚을 내야 합니다. 그 청구서는 결국 미래 세대에게 돌아갑니다. ‘미래대응기금’이 정작 미래 세대에게 ‘미래부담기금’이 되는 역설입니다.
교육교부금 ‘개편’ 뒤에 가려진 20조 원의 행방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부는 1972년부터 이어져 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방식을 개편할 계획입니다. 기존 방식이라면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내년도 교부금이 새 산식에서는 약 78조9천억 원 수준에 그칠 전망입니다.
민주당은 절감된 재원을 교육계정에 “온전히” 투입하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라지는 약 20조 원입니다. 어디로, 얼마가 가는지는 정부의 말이 아니라 법안 조문과 숫자로 확인해야 합니다. 교육재정 개편을 명분으로 확보한 돈이 다른 용도로 흘러가는 길을 열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지만, 그 열쇠를 정권이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조선 후기 환곡도 출발은 백성을 위한 구휼이었습니다. 그러나 견제받지 않는 관의 재량은 결국 삼정문란의 한 축이 됐습니다. 좋은 명분이 나쁜 결과까지 막아주지는 않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곳간은 언젠가 누군가의 쌈짓돈이 됩니다.
정부는 법에도 없는 ‘추가세수’라는 말로 국채 상환 원칙을 우회할 것이 아니라, 국가채무 감축 원칙부터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기금의 자체 지출 변경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대규모 지출 변경에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별도의 통제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교육교부금 개편이 교육 현장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말이 아닌 수치로 증명해야 합니다.
기금의 크기는 미래가 정할 일이지만, 견제의 크기는 지금 정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미래대응기금을 “저수지”이자 “안전판”이라고 자평합니다. 그렇다면 말이 아니라 법으로 증명하십시오. 미래기금이 결코 미래‘부담’기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의힘은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될 관련 법안을 엄정하게 심사해, 말뿐인 안전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