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21년 12월부터 73차례 이어온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을 약 4년 8개월 만에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의회가 장애인 이동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과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서기로 한 데 따른 결정입니다.
대화와 정치가 오랜 갈등을 해결하는 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를 환영합니다. 긴 시간 거리와 지하철에서 권리를 외쳐온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과,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에 공감해 온 시민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지하철 시위가 멈췄다고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와 직장에 가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누군가의 배려나 양보로 주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장애인의 기본권이 수년간의 시위와 사회적 갈등을 거친 뒤에야 정치의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시민의 불편을 감수하게 해야만 정치가 움직이는 구조를 끝내는 것이 정치와 행정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서울시의회는 약속한 이동권과 노동권 관련 조례를 차질 없이 통과시켜야 합니다. 서울시 역시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저상버스 확대, 특별교통수단 개선,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 역시 선언이나 숫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의 일상에서 실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수많은 장벽이 놓여 있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거대한 장벽보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장벽들이 누군가의 일상을 더 자주 가로막습니다. 몇 센티미터의 턱, 닫힌 출입구, 이용하기 어려운 교통수단, 접근할 수 없는 정보와 시설, 제도의 작은 빈틈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학교와 직장, 문화생활과 사회참여로 가는 길을 막는 높은 벽이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몇 개의 큰 장벽을 없애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에게만 장벽이 되는 작은 불편까지 하나씩 걷어내는 ‘장벽없는 대한민국’이어야 합니다. 이동이라는 하나의 장벽을 넘어선 뒤에도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장벽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교육의 장벽, 노동의 장벽, 정보의 장벽, 문화와 정치 참여의 장벽까지 장애인의 삶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벽들을 하나씩 없애야 합니다.
조국혁신당 장애인위원회는 이번 합의를 환영하며, 정부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합니다. 이동권 보장을 넘어 장애인이 교육받고, 일하고, 이동하고, 참여하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마주하는 장벽을 없애는 일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회와 지방의회가 함께 나서야 합니다.
장애인이 시위하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는 사회,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요구하지 않아도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 그리고 누구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장벽 하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삶이 멈추지 않는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