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의료기기 기술도 멈춰서나…예산 부족에 내년 연구 65개→33개 필수의료기기 국산화 5개→2개, 기초·원천기술 30개→12개 산업부 분담금 계획의 54.3%만 반영…범부처 사업 전체 연구계획 차질 임문영 “국정과제로 추진한 사업, 예산 부족으로 핵심과제 미뤄져선 안 돼”
산업통상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 온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R&D)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내년부터 당초 계획대로 추진되기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연구과제는 65개에서 33개로 사실상 반토막 나고, 세계 최초 기술에 도전하는 연구와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필수의료기기 국산화 과제도 줄줄이 착수가 미뤄질 전망이다. 임문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 광산구을)이 산업통상부와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의 2027년 신규과제는 당초 65개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정부 예산안 기준 33개로 32개 줄어든다. 사업 축소의 직접적인 원인은 산업부 분담금 부족이다. 이 사업은 과기정통부·산업부·복지부·식약처가 2026년부터 7년간 국고 8,383억 원을 공동 투입하는 범부처 R&D 사업으로, 각 부처가 사업단 예산을 나눠 부담한다. 그러나 산업부의 2027년 분담금은 당초 계획한 367억7,200만 원 가운데 199억8,000만 원만 정부안에 반영됐다. 계획의 54.3%에 불과하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계획액의 100%, 과기정통부는 86.2%가 반영됐다. 예산이 줄면서 계속 진행 중인 연구과제에 필요한 비용을 우선 투입하고 나면 새로운 기술 개발에 쓸 수 있는 재원이 크게 부족해진다. 이에 따라 사업단이 내년에 새로 시작하려던 과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뒤로 밀리게 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업단이 ‘세계 최초’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한 ‘X선 영상 3D 증강 정량진단 AI’다. 2차원 X선 영상만으로 3차원 정보를 구현해 CT 촬영 없이도 정밀진단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기술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2027년 착수가 어려워졌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 과제도 당초 5개에서 2개로 줄어든다. 가슴을 열지 않고 혈관을 통해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이식할 심장을 살아 있는 상태로 운반하는 ‘심장 보존 운반기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품목은 해외 공급에 문제가 생겨도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국산 대체재가 없는 의료기기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필수의료기기의 공급 중단은 실제 환자 치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7년 미국 고어사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소아 심장수술용 인공혈관 재고가 부족해졌고, 2019년 정부가 미국 본사를 직접 찾아 공급 재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급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국산화 사업이 정작 예산 부족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미래 의료기기 산업의 씨앗이 될 기초·원천기술 연구는 더 크게 줄어든다. 당초 30개를 새로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12개만 추진할 수 있게 돼 60%가 감소한다. 이는 단순히 내년에 연구과제 몇 개를 덜 시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사업은 기초·원천 연구에서 확보한 우수 기술을 2030년부터 제품개발 과제로 연계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지금 원천기술 연구가 줄어들면 사업 후반기에 제품개발로 이어질 후보 기술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년도 예산 부족이 향후 의료기기 제품화와 산업 경쟁력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산업부는 올해 2분기 이 사업을 국정과제 추진실적으로 보고하고, 과제 선정평가를 거쳐 106개 과제를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를 비롯해 과기정통부·복지부의 국정과제에 함께 연계된 사업이지만, 사업 두 번째 해부터 예산 부족으로 신규과제가 대폭 축소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임 의원은 “국정과제로 시작한 첨단 의료기기 R&D가 불과 사업 두 번째 해부터 예산 부족으로 신규과제를 절반밖에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세계 최초 기술에 도전하는 연구와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까지 뒤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개발은 한번 시기를 놓치면 단순히 1년 늦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지금 기초·원천기술 연구가 줄어들면 향후 제품개발과 사업화까지 연쇄적으로 늦어질 수 있는 만큼, 당초 계획한 핵심과제가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산업부가 필요한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