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볼수록 가난해지는 나라, 이게 정상입니까?”
진보당 여성위원회, 10.29 국제돌봄의날 기자회견 진행
진보당 여성위원회는, 29일(목) 오전10시 국회앞에서 ‘10·29 국제돌봄의 날’을 기념하는 기자회견 ‘돌볼수록 가난해지는 나라, 이게 정상입니까?’을 진행하였습니다.
기자회견에는 진보당 송영주 최고위원과 조은영 여성위원장이 참여하였고 발언자로는 4세 아이아빠 이경민 양육자, 초등중등 자녀와 부모를 돌보는 김은규 돌봄자, 조은영 여성위원장이 차례로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는 부모 ”
4세 아이를 키우는 이경민님은, 맞벌이 가정은 어린이집 등·하원 전후 2~3시간의 돌봄 공백을 양가 부모님의 희생에 기대거나, 다달이 수십만 원씩 드는 도우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에서 매번 눈치를 보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특히 남성에게도 육아휴직과 단축근무를 권장하지만 직장에서는 여전히 사용하기 어렵고, “유럽의 ‘라떼파파’처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되고 싶지만, 칼퇴근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서는 아득한 꿈입니다.”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아이 키우는 일을 개별 가정의 희생이나 개인의 경력단절로 때우려 합니까? 돌봄은 개인의 운이나 선의에 맡겨둘 일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원하는 건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긴급돌봄 체계, 눈치 보지 않고 육아기 단축근무와 정시 퇴근을 쓸 수 있는 문화, 그리고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처우 개선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족을 돌본 대가는 경력단절과 노후빈곤”
두 자녀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던 김은규 돌봄자는, 아이와 가족을 돌보느라 한 번도 쉬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사회보험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자녀돌봄과 함께 양가 부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65세 이후 수령할 국민연금을 계산해보았습니다. 478,060원입니다.돌봄을 전담하고 짜투리 시간에 일하거나 혹은 사회활동을 한 저는 한 번도 논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국민연금 수령예상액은 이 땅에서 아이를, 가족을 전면으로 돌본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돌봄은 여성에게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적 시간표를 다시 짜고, 자녀,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출산크레딧(국민연금)을 돌봄크레딧(국민연금)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돌봄노동은 필수노동인데 왜 저임금인가”
조은영 여성위원장은,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활동지원사, 학교급식 노동자 등은 사람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근골격계 질환과 성희롱·성폭력 위험 등에 노출돼 있습니다.
돌봄노동이 저평가되는 데에는 돌봄을 여전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가 반도체와 AI를 미래투자라고 한다면, 사람을 살리고 존엄을 지키는 돌봄 역시 국가가 투자해야 할 핵심 사회 인프라입니다.
이후 퍼포먼스를 통해 돌봄을 짊어진 개인들에게 돌봄국가책임제, 돌봄연금(크레딧), 돌봄노동자 처우개선을 통해 누구나 좋은 돌봄을 받고 돌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진보당의 약속을 다짐하였습니다. 진보당이 발의한 돌봄3법(돌봄정책기본법, 돌봄노동자법, 돌봄자지원법)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붙임. 발언문
■ 발언문_ 이경민 양육자
오늘 10월 29일 '국제 돌봄의 날'을 맞아, 네 살 아이를 키우며 매일 일터와 집을 전쟁터처럼 오가는 맞벌이 부모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아이는 요즘 말문이 트여서 한창 예쁜 짓도 많이 하고 호기심도 많을 때입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의 하루는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늘 조마조마함의 연속입니다. 어린이집 등·하원 전후로 생기는 '두세 시간의 돌봄 공백' 때문입니다. 양가 부모님의 희생에 기대거나, 다달이 수십만 원씩 드는 도우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에서 매번 눈치를 보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부모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미안함만 남습니다. 독감이나 수족구 같은 감염병이라도 도는 날엔 온 집안이 비상입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회사 눈치 보며 겨우 연차를 쓸 때마다, 이러다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하나 절벽 끝에 선 기분이 듭니다.
유럽의 ‘라떼파파’처럼 한 손엔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엔 커피를 들며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되고 싶지만, 칼퇴근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직장 현실에서는 아득한 꿈일 뿐입니다. 남성 육아휴직이나 단축근무를 말로만 장려할 뿐, 정작 현장에서는 ‘유별난 아빠’ 취급을 받으며 경력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언제까지 아이 키우는 일을 개별 가정의 희생이나 개인의 경력단절로 때우려 합니까? 돌봄은 개인의 운이나 선의에 맡겨둘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한 수당 몇 푼이 아닙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긴급돌봄 체계, 눈치 보지 않고 육아기 단축근무와 정시 퇴근을 쓸 수 있는 문화, 그리고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처우 개선입니다. 부모가 제때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일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저출생 대책도 다 겉도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돌봄은 개인이 알아서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정부와 사회는 말뿐인 약속을 넘어 '국가돌봄책임제'를 제대로 실행하고, 돌봄 환경을 당장 바꾸십시오.
아이의 웃음이 부모의 눈물이 되지 않는 사회,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돌봄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 김은규 자녀와 부모돌봄자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김은규입니다.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 둘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스스로도 대견하고 안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열심히 일하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 둘을 온전히 제가 돌봐야 했습니다. 화장실도 편히 갈 수 없던 시절이 지나 조금씩 제 일을 갖고 싶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니 새로운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어린이집보다 일찍 마치는 아이들 돌봄을 위해 학교돌봄, 마을돌봄, 지인과 친인척의 도움 등 2중, 3중의 돌봄막으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어느새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부모에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내 딸이 나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65세 이후 수령할 국민연금을 계산해보았습니다. 478,060원
이라니! 돌봄을 전담하고 짜투리 시간에 일하거나 혹은 사회활동을 한 저는 한 번도 논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국민연금 수령예상액은 이 땅에서 아이를, 가족을 전면으로 돌본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는 1인 1연금 시대를 만들겠다 하고, 대통령은 국가돌봄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독박돌봄을 해야 하고, 커리어를 포기해야 합니다. 또한 돌봄에 끝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지만 먹을거, 입을거, 친구관계, 학교생활 등 저의 스위치는 24시간 켜진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가 끝일까요? 이제 양가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아픈 곳이 하나씩 늘어갑니다. 함께 살지 않아도 돌보는 일은 결국 저의 책임이 되버렸습니다.
누군가, 사회는, 국가는 “당신이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이야”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소중한 일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는 일은 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적 시간표를 다시 짜고, 자녀,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출산크레딧(국민연금)을 돌봄크레딧(국민연금)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또한 돌봄기간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로 기업과 사회가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를 국가가 먼저 만들어야 성평등한 돌봄이 실현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발언문 _ 조은영 여성위원장
한 요양보호사는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기까지 어떤 돌봄을 받았는지가 중요하다”(요양보호사, 이은주)며 어르신들을 보면 ‘애틋’하다고 말합니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어떤 분은 “내 부모라고 생각하면 속상함도 눈 녹듯 사라진다”(요양보호사, 김춘옥)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는 분들은 요양 현장만이 아니라 곳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서 밥하는 게 너무 좋다고 하신 학교급식 노동자,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는 보육교사, 누군가의 눈과 손, 발이 되어주는 장애인활동지원사까지. 이분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 이분들에게는 안타까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같은 재앙을 겪으며 돌봄 없이는 인간의 삶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돌보는 사람을 추앙하는 말도 넘쳐납니다. 그런데도 이분들의 처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말로만 치켜세운들 무슨 소용입니까? 여전히 돌봄을 ‘여자라면 누구나 다 하던 일’로 여겨 전문적인 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 그만큼만 주고 그만큼만 대우하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고,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현장 노동자들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남습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아이들 급식을 해주시는 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일이 너무 좋지만, 교사가 된 초등학교 동창을 급식실에서 마주쳤을 때는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괴롭다고 하셨습니다.
진보당은 돌봄이 존중받는 나라, 돌봄받을 권리와 돌봄할 권리가 모두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정부는 늘 ‘돈이 없다’고 하지만, 사상 초유의 반도체 호황으로 올해 국세수입은 당초 예산보다 88조 원 넘게 더 걷힐 전망입니다. 정부는 이 재원을 반도체·AI 같은 미래 투자에 쓰겠다는 기조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살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돌봄에도 이 돈을 가장 먼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병파산, 독박돌봄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돌봄·의료·간병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