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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국회의원 보도자료

    세월호 참사 1년!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국가인가?

    • 보도일
      2015. 4. 15.
    • 구분
      국회의원
    • 기관명
      박영선 국회의원
- 박영선 의원 인사말 전문 -

참으로 먹먹합니다.

1년 전 팽목항에 나부끼던 노란 리본, 그 노란 리본에 적혀있던 부모님의 애끓는 절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종자 아홉 명은 저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구조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모두 구조되기 전까지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원내대표 시절에 안산에서 서울까지 행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꼬박 이틀을 걸어서 광화문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대통령은 끝끝내 유가족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일년 전, 유가족과 국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한 핵심이 유가족이 직접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협상도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고 진상조사위원회가 어떻게 유가족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는지에 방점이 있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조기 가동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증거가 사라져가고 또 인간의 기억이 불확실해져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진상조사는 빠를수록 좋다는 그런 상식에 기초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특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우리는 또 다른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상 당사자인 저로서는 굉장히 당황했던 대목입니다.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특검은 상식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삼켜버렸던 특검은 지금은 거론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하고 달라질 것이라던 우리 국민들의 염원 역시 1년이 지난 오늘까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의 요구를 모질게 거부하던 대통령의 그 차가운 뒷모습. 어쩌면 이미 오늘의 상황을 예고해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목포 인근 해역에서는 여덟 건의 해상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전체 여객선의 25%는 선령 20년이 넘는 노후 선박입니다. 과적, 과다 승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세월호특별법, 이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 가동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라는 또 다른 복병에 발목이 잡혀서 가동조차 못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의 근본 문제는 진상 규명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치졸한 입법 기술상의 다툼을 유도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행령안은 위원회의 정원보다 30명이나 줄어든 90명으로 출범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진상조사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기를 바라는 국민과 유가족의 바라는 국민과 유가족의 여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이것은 행정부가 재량권을 과도하게 남용해서 입법부 제정 법률의 취지를 저버리는 것으로써 헌법이 명시한 삼권 분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시행령은 위원회의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기획조정실장을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보하고, 기획조정실장 밑의 기획 총괄담당관 역시 부이사관 또는 서기관으로 보하도록 규정해서 민간인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의 핵심은 바로 민간인이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민간인 참여 배제는 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조사 대상인 정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으로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을 당장 철회하고 헌법과 모법인 세월호특별법의 취지에 맞게 시행령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과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작년 가을부터 진상조사위원회가 즉시 가동됐다면 과연 정부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국민이, 그리고 정치권이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서 정부를 감시해야 할 것이고, 진상 규명에 다시 힘을 모아야할 것입니다.

정부 여당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루 속히 인양해서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합니다.

1628년 8월 10일 스톡홀름항을 떠난 스웨덴 바사호는 첫 항해를 나서자마자 갑작스런 돌풍에 침몰했습니다. 333년 뒤인 1961년 스웨덴은 선체를 인양해 조사한 결과, 애초 설계보다 더 많은 대포를 싣는 바람에 바사호가 복원력을 상실했다고 밝혔습니다. 5년 간의 인양 작업 끝에 육지로 올라온 바사호는 현재 박물관에서 영구 보존 중이며 아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월호를 인양해서 후손들에게 영원한 교훈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두 분 공동대표께서 개최하신 토론회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다시 한 번 세월호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저 나름으로 진실을 담아서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을 시원히 풀어드리지 못한 저의 부족함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오늘 인사말을 마치려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