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14일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코너에 대해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부실대응과 위기대처능력의 부재를 풍자한 해당 코너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제5호 “그 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 위반했다는 것이다. 우리야말로 방심위의 이 같은 결정에 불쾌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의견제시’는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약한 수준의 제재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연 ‘민상토론’이 방심위로부터 의견을 제시받을 정도의 문제를 일으켰는지 근본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코너는 사회적 이슈를 재치 있게 풍자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방송 초기부터 어느새 ‘정치풍자’를 찾아보기 힘들게 된 코미디프로의 현실을 스스로 풍자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심위가 문제삼은 방송만 하더라도 메르스가 온 나라를 공포에 빠트리고 국가적 재난으로 번져가는 와중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날카로운 재치와 유머로 풍자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를 전혀 해소해주지 못하는 정부에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민상토론’의 풍자와 해학으로 답답한 마음을 뚫리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실제 인터넷에서 이날 방송이 크게 회자됐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비록 방송 내용 중 정부에 일부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풍자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메르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왜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주었다고 방심위가 판단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날 ‘민상토론’으로 인해 불쾌감을 가졌을 곳은 오로지 박근혜 정부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방심위의 심의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의 ‘불쾌감’을 달래주기 위한 심의로 볼 수밖에 없다.
방심위의 여당측 심의위원들이 그동안 종편의 오보·막말·편파방송에 대해 갖가지 이유와 느슨한 잣대로 ‘문제없음’을 남발해왔고, 기껏해야 ‘의견제시’나 ‘권고’ 정도의 경징계를 내리도록 힘써온 것을 비교하면, 이번 ‘민상토론’에 대한 방심위의 제재가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더욱 뚜렸해진다.
한편 비슷한 시기 발생한 ‘민상토론’ 결방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1일 <개그콘서트>에서 ‘민상토론’이 결방됐다. 많은 시청자와 언론이 그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KBS가 내놓은 답변은 ‘당일 코너 완성도가 떨어져 녹화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을 풍자하자, 보수진영 일각에서 비판을 쏟아내며 방심위에 심의를 요청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인 직후 바로 다음주 방송이 녹화조차 되지 않고 불방되었다는 점에서 의혹을 씻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만약 KBS가 어딘가의 외압에 의하거나, 혹은 알아서 자기검열을 한 결과로 ‘민상토론’이 결방된 것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속 시원한 풍자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를 결방시킨 것이라면, KBS가 무슨 염치로 국민에게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차별화된 포맷과 주제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코너를 갑자기 빼고 녹화한 배경에 의심쩍은 외압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민상토론’이 결방 이전처럼 속 시원하게 방송되는 것이다. 만약 KBS가 이후에도 스스로 얘기했듯 완성도를 높인 ‘민상토론’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외압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송에 출연해 자신에 대한 비판글을 직접 읽기도 하고, 백악관 기자만찬회 연설에서 스스로 풍자의 대상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것을 본 우리 국민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멋지다’면서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여기고 있다. ‘민상토론’ 정도의 풍자코미디에조차 심의의 칼날을 들이댄다면 그런 일은 앞으로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방심위에게 ‘정치심의’의 칼을 내려놓고 정부의 불쾌감 해소에 심의를 악용하는 일을 중단하길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민상토론’이 정상적으로 방송되어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뚫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