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해킹팀’의 불법감청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를 우리나라의 5163부대, 즉 국가정보원이 구매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지 6일이 지난 7월 14일이 되어서야 지상파방송이 이 사안을 처음 보도했지만 보도내용을 평가하기가 민망할 정도의 함량미달이었다. 반면 JTBC는 이날 1, 2부에 걸쳐 모두 8건을 보도하며 다각도로 이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힘써 지상파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야말로 ‘유료방송 종편’ JTBC가 공영방송과 같은 기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표 : 첨부파일 참조
이미 지적했듯 이 사실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7월 9일부터 언론 등이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사실들을 속속 밝혀내고 있는 7월 13일까지 지상파3사 메인뉴스프로그램에서는 단 한 번도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7월 14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RCS를 구입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용도와 관련해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놓자 그제서야 지상파방송들은 국정원의 주장을 앞세워 마지못해 관련 보도를 찔끔 하는데 그쳤다.
MBC는 “국정원은 대북 정보전을 위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용이라고 강조했다”며 국정원의 주장을 비중있게 소개할뿐, 이 같은 국정원의 주장에 얼마나 많은 빈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야당은 해당 프로그램 구입연도가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해라는 이유를 들어 진상 규명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새정치연합의 신경민 정보위 간사의 짧은 코멘트를 인용하는데 그쳤다. SBS 역시 “국정원은 북한의 해킹에 대비한 연구용으로 프로그램을 샀을 뿐 국내 사찰용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2건을 보도한 KBS는 첫 번째 보도에서는 MBC, SBS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보도했고, 두 번째 보도에서 “국정원이 구매한 소프트웨어는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에 침투해 거의 모든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강력한 해킹 프로그램”이라며 그나마 RCS의 심각성에 대한 보도를 했지만, 다른 언론에서 이미 제기된 내용을 뭉뚱그려 소개할뿐 유출된 자료에서 확인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앞서 보도한 국정원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KBS의 보도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수준의 겉핥기식 보도였던 것이다.
반면 JTBC는 전혀 달랐다. 이날 모두 8건을 보도한 JTBC는 첫 보도에서부터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은 없었다’는 국정원장의 주장에 대해 “오늘 저희들이 보도할 내용만 보더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 있다”며 “국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구입 시점이나 혹은 비밀리에 구입한 행태로 볼 때 '국내 사찰'이나 '정치 사찰'에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카카오톡'의 해킹 기술, 국내 보안업체인 '안랩'의 보안 수준,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의 해킹 가능성을 궁금해 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며 국정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구체적인 정황증거들을 소개했다.
이어 두 번째 보도에서는 2012년 4.11 총선 뒤 국정원의 감시 대상자가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총선에 감청프로그램을 이용한 뒤, 검증이 되자 본격적으로 감시 대상자를 늘려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세 번째 보도에서는 “국내 대형 포털의 생활 정보 블로그나 메르스 관련 정보 주소에 감청프로그램을 심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사항도 등장했다”며 “즉 내국인을 상대로 한 게 아니라는 국정원의 해명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방부, 경찰, 기무사 등 정보 관련 기관들의 전방위적 감청장비 도입 의혹에 대해서도 보도했고, 2부에서는 야당 정보위 신경민 간사의 인터뷰와 이번 사안과 관련된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해서 설명하는 ‘팩트 체크’가 보도됐다.
한편 보도순서도 지상파와 JTBC를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MBC는 이날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을 처음과 두 번째에 보도한 뒤 뜬금없이 ‘유라시아 친선특급 대장정’ 관련 보도를 3~4번째에 연달아 내보냈다. 이날 SBS에서는 아예 다루지도 않은 내용이고 KBS에서는 뉴스 마지막에서야 한꼭지로 보도한 사안을, MBC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대장정이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꿈을 함께 안고 달리는 여정’이라고 강조했다”며 2건을 보도한 것이다. 이어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선출 소식 등을 “그동안 악화됐던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그려낸 뒤에야 국정원과 관련된 보도를 한 건 내보냈다. SBS는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을 1~3번째에 보도한 뒤 국정원 관련 보도를 했고, KBS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폐막, 자원외교 감사결과, 이란 핵협상 타결, ‘박 대통령-여 지도부 모레 회동’ 등을 주요보도로 줄줄이 보도한 뒤 12번째에 가서야 국정원 관련 보도를 했다.
※ 표 : 첨부파일 참조
반면 JTBC는 1부 톱부터 6번째 보도까지 국정원 관련 보도를 집중했고, 2부가 시작된 뒤 신경민 의원 인터뷰를 보도했으며 뉴스가 끝나기 ‘팩트 체크’로 다시 한 번 이 사안을 다루는 끈기와 집중력을 보여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사안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기본권을 근본부터 위협하는 심각한 반민주적, 반헌법적 사안이다. 아직 실체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공포스럽다.
그런데 지상파방송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철저히 ‘나 몰라라’하더니, 국정원의 궁색한 답변이 나오고서야 관련보도를 찔끔 내놓는 것은 그야말로 스스로의 존재 부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KBS에 대해 이러고도 국민에게 수신료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료방송 종편’ JTBC가 오히려 공영방송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역설적이고도 비정상적인 방송환경이 계속되는 한 수신료 인상도, 지상파방송을 위한 정책들도 결코 진전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