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어제 반도체 사업장 퇴직자 30명에 대해서 질병 피해 보상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현재 신청자가 90명에 이르고 있고, 이번 보상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보상 원칙과 기준을 거의 원안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이야기 했다.
삼성전자의 발표에 따라서 많은 언론들이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보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문제 해결의 끝이 보인다.”라고 보도를 하였다.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만 220여 명, 이 중 74분이 돌아가신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삼성전자에게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어제 발표한 피해보상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은 무엇인가? 왜 공개를 하지 않는가?
오늘 이 자리에서 공개하는 삼성전자의 ‘수령확인증’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주고 있다.
직업병 피해자가 보상신청 서류로 삼성전자로부터 전달받은 ‘수령확인증’에는 ‘보상합의와 관련된 내용 일체를 비밀로 해야 하고’, ‘일체의 민형사장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합의서 내용 위배 시 회사로부터 수령한 금원을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보상위원회가 만든 ‘약관’ 제12조 ‘신청자의 의무’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은 가능했다. 그러나 실제 신청자들에게 보상을 하면서 비밀유지와 금원 반환을 강제한 ‘수령 확인증’에 놀라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행위가 故 황유미님 가족, 故 박지연님 가족 등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산재신청 포기 등을 조건으로 수억 원을 제시하면서 회유했던 지난 시기 삼성전자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혹 삼성전자는 또 다시 직업병 문제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현재 진행하고 있는 보상위원회를 통한 보상절차는 ‘사회적 약속’을 파기한 것은 아닌가?
지난 7월 23일 발표된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핵심은 “공익법인의 설립을 통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행’”이었다. 사회적 문제인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기구를 통해서 해결하자는 것이 권고안이 담고 있는 정신이다.
이러한 권고안의 정신을 사실상 거부하고 만든 보상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삼성전자가 직접 지명한 사람들이고, 심지어 보상위원 7인 중 회사측과 근로자 대표측은 누구인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보상위원회를 삼성전자 문제해결을 위한 독립된 사회적 기구, 제3의 중재기구라고 할 수 있는가? 조정 절차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던 ‘사회적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삼성은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조속히 답해야 한다.
삼성은 지금까지 1000억 원의 사내기금을 통해서 보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을 뿐, 자체적인 종합진단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올해 7월 SK하이닉스는 3년간 안전경영에 4,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천공장에서 4월에 발생한 3명의 노동자 질식 사망사고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국회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오늘 공개한 ‘확인 수령증’을 통해서 우리는 삼성의 진실을 보았다.
삼성은 경제적으로 절박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신속한 보상’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 약속했던 조정위 권고안 이행을 뒤로 하고, 구체적인 보상 기준과 내용을 비밀로 하면서 ‘사회적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고 있는 것이다.
故 황유미님 부친이 약속했던 ‘또 하나의 약속’이 이행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삼성이 진정으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보상 기준과 내용 등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해야 하고, 보상을 빌미로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하고, 나아가 민‧형사상 이의제기를 하지 않도록 적시하고 있는 ‘수령확인증’ 서명강요를 즉시 철회해야 한다.
나아가,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약속한 진정한 ‘사회적 약속’ 이행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재고하고, 조정과 교섭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