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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위안부 서술오류 관련

    • 보도일
      2013. 10. 2.
    • 구분
      국회의원
    • 기관명
      김태년 국회의원
- 인터넷에서 긁어온 위안부사진의 원출처에는 1930년대 후반 촬영! - 위안부 강제성 축소하고 ‘1944년 이후 일부여성이 희생’된 것으로 기술! 교학사 교과서가 위안부와 관련하여 인용한 사진자료의 원출처에는 사진촬영시기가 1930년대 후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학사 교과서는 본문에서 위안부가 1944년 여성정신근로령 이후 일부여성들이 희생당한 것으로 기술하여 역사왜곡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관련사진의 출처를 구글, 다음 등으로 밝히고 있는데, 자료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사진을 설명하면서 위안부 동원과 운영의 강제성을 축소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원출처에는 위안부동원의 강제성 등이 설명되어 있는데 반해, 정작 교과서에서는 마치 위안부가 자의에 의해 일본군을‘따라다닌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민주당 교육문화체육위원회 김태년의원은 “자료출처만 성실하게 확인했더라도, 위안부가 1944년 이후 일부 여성에게 있었던 일이라고 기술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취소를 요청했다. 교학사 교과서 249쪽 우측 상단의 사진(별첨참조)은 저자가 출처를 ‘구글’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의 원출처는 ‘무라세 모리야스’라는 일본인이 중국전선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1937년 7월~1940년 1월에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나의 종군 중국 전선」 ( 村瀬守保写真集『私の従軍中国戦線』日本機関紙出版センター刊 1988년 초판발행). 또한 교학사 교과서는 사진의 설명으로 “일본군 트럭에 실려 이동중인 일본군 위안부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닌 경우가 많았다”며 원출처에도 없는 내용을 기술해, 위안부가 마치 자발적 참여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김태년 의원은 이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사진에 대해 같은 설명이 나오는데, 원출처 확인 없이 사진과 설명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 249쪽 우측 중단의 사진(별첨참조)은 ‘다음’을 출처로 표기하고 있다. 이 사진의 원출처는 1938년 1월 1일 일본육군 최초로 세워진 것으로 확인된 양가택(楊家宅)이라는 위안소의 모습으로, 당시 위안소에서 성병검진을 했던 산부인과 의사 ‘아소 데츠오’가 1937년 11월부터 1941년 4월까지 근무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해당 사진의 원 출처에는 “위안소 개설 후 머지않아 2월 24일 밤, 한 명의 위안부가 탈출하고, 군공로에 있던 입초한테 붙잡혀서, 군의 명령으로 본인(아소)이 그 신병인수를 위해 갔다”고 기술되어 있어, 위안부가 강제적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태년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가 얼마나 부실하게 만들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첨부 : 관련사진 파워포인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