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2009년 12월 카자흐스탄 ‘숨베’사를 3.61억 달러에 인수할 때, 당시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지사장이 이 사업을 소개해준 대가로 중간 에이전트로부터 21만 달러(약 2억3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에이전트는 현지 브로커를 속여 28억원을 가로챘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현지 지사장에게 ‘뇌물’로 준 것이다. 이 일로 당시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지사장이었던 유모씨는 징역 7년을, 유모씨에게 뇌물을 건넨 석유공사 직원 출신의 중간 에이전트는 징역 2년 6개월의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최민희 의원(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이 입수한 법원 판결문 등의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숨베(Sumbe)’사는 카자흐스탄의 석유광구 2곳(아리스탄, 쿨잔)을 보유한 회사로, 유모씨는 2009년 7월경 현지 브로커인 오라지 사람으로부터 이 회사 매각정보를 입수한다. 이후 2009년 9월경 유모씨는 석유공사 본사에 ‘숨베사를 매입할 것’을 제의하는 보고를 하고, 석유공사는 ‘숨베사 매입’을 추진하게 된다. 또한 유모씨는 오라지만을 석유공사의 숨베사 매입 협상 대리인으로 할 것으로 요청해 본사로부터 위임장을 발급받아 오라지만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오라지만은 매입이 성사될 경우 석유공사로부터 숨베사 지분 15%를 받고 그 비용은 석유공사가 대납하되 향후 석유를 생산해 이익이 나면 변제하는 조건의 컨소시엄 계약을 맺었다.
동시에 유모씨는 전직 석유공사 직원인 김모씨를 카자흐스탄으로 불러들여 ‘석유공사에 영향력이 있는 실세’라고 오라지만에게 소개하는 등 만남을 주선했고, 김모씨는 오라지만을 여러 번 만나면서 ‘자신과 계약을 하면 숨베사를 석유공사에 매각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두 사람의 말을 믿은 오라지만은 숨베사 매각이 성사될 경우 335만 달러를 김모씨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면계약서(Agreement)를 김모씨와 작성했다. 아울러 김모씨는 오라지만으로부터 받는 돈의 50%를 유모씨에게 지급하기로 서로 합의했다.
이후 석유공사는 실제로 숨베사를 3.61억 달러(약 3900억 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이 가운데 오라지만의 지분 15%에 해당하는 5415만 달러(약 600억 원)를 석유공사가 대납했다. 그리고 오라지만은 김모씨와의 계약에 따라 김모씨에게 6회에 걸쳐 254.5만 달러(약 28억원)를 송금했고, 김모씨는 이 가운데 21만 달러(약 2억3천만원)를 유모씨의 동생 부인 계좌를 통해 유모씨에게 전달했다.
이 사건은 김모씨 회사의 직원이 “이 같은 불합리한 회사 업무”에 불만을 가지고 회사를 그만둔 뒤 2012년 7월 석유공사에 제보를 하고, 이 제보를 바탕으로 석유공사가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 검찰 수사 결과 모두 밝혀진 사실로, 2014년 4월 대법원은 유모씨와 김모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과 ‘뇌물공여’로 유죄를 판결했다.
즉 석유공사에서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지사장이, 자신의 지위로 알아낸 현지 석유회사 매각 정보를 활용해 ‘숨베’사 매입 과정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전직 석유회사 직원과 짜고, 마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현지 브로커를 속여 ‘에이전트 수수료’로 약 28억원을 받아내고, 자신도 이 중에서 2억원 넘게 챙긴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지만, 이 사건에서 아직 의혹이 남는 부분은 있다. 첫째 애초 유모씨가 오라지만에게 김모씨를 소개할 때 “석유공사 부사장과 동년배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등 ‘숨은 실세’처럼 표현했는데, 과연 이 둘의 사기행각을 알고 있고 지원했을 또 다른 석유공사 관계자는 없는지, 둘째 김모씨는 오라지만으로부터 335만 달러를 받기로 했지만 254.5만 달러만 받은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는데 나머지 79.5만 달러는 실제 지불되지 않았는지, 셋째 김모씨와 유모씨는 오라지만으로부터 받은 돈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실제 유모씨가 받은 돈은 21만 달러에 불과해 나머지 약 100만 달러의 지급경로와 지급되지 않았다면 왜 지급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추후 확인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 “이명박 정부의 ‘묻지마’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자원마피아를 낳은 비리사건”
한편 2015년 1월 감사원은 석유공사의 ‘숨베’! span>사 매입이 잘못된 경제성 평가로 인해 많게는 1.26억 달러 비싸게 인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석유공사가 이사회에 보고한 자료대로 ‘숨베’사의 자산가치를 산정하면 2.34억 달러 정도의 가격이 적당한데, 석유공사가 원유수출가격을 부풀리는 등 자산가치를 5.02억 달러로 보고해, 3.61억 달러에 매입하면 경제성이 있는 것처럼 부당하게 업무를 처리해 매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당시 석유공사가 ‘숨베’사를 3.61억 달러에 매입한 것은 카자흐스탄측 매각자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것으로 서둘러 매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산가치를 부풀렸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즉 이명박 정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특징인 ‘에너지 공기업 대형화’ 정책에 따른 ‘Great KNOC 3020’(2012년까지 일생산량 30만 배럴, 매장량 20억 배럴 확보 계획)에 따라 마구잡이식으로 해외 광구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한 ‘매매성사’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석유공사의 장모 탐사광구취득 팀장 또한 “당시는 KNOC 3020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통상의 절차에 비해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당시 지식경제부는 석유공사가 ‘숨베’사를 인수한 직후 발 빠르게 보도자료를 내고 “유전의 생산량이 2012년 1만배럴/일, 2014년 2만배럴/일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석유공사측은 생산계약 전환 후 5.3년에 투자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숨베’ 광구의 2014년 9월 기준 일 생산량은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천 배럴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민희 의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지 지사장이었던 유모씨는 석유공사가 ‘숨베’사 매입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고 과거 직장 동료를 끌어들여 ‘자원마피아’로 결탁해 뇌물을 받아 챙긴 것”이라며 “이는 곧 이명박 정부의 ‘묻지마식’ 해외자원개발사업이 낳은 ‘태생적 비리’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또 “석유공사는 매입 과정에 정보 제공과 대리인 역할을 한 것만으로 현지 브로커에게 지분 15%에 해당하는 600억 원을 대납해주고, 이 현지 브로커는 석유공사 전현직 직원에게 속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에게 수수료라며 28억 원을 주고, 또 이 사람은 석유공사 현지 책임자에게 2억 원을 뇌물로 준 이 사건이 바로 ‘비리로 점철된 사건’”이라며 “‘숨베사 매입’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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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 오라지만과 석유공사 전 직원 김모씨가 맺은 이면계약서(Agreement) 사본(번역본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