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을 통한 국정개혁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걱정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는 총리를 필두로 한 ‘친위·호위 내각’에 이어서 현직 국정원장으로 돌려막은 ‘원조 친박 비서실장’, 삼권분립 헌법정신마저 훼손한 ‘강경 친박 정무특보’로 지난해 말 ‘정윤회 문건파동’ 이후 거세진 인적 쇄신 요구에 응답했다. 3개월에 걸친 국민적 요구는 결국 거부당했다.
대통령은 쇄신 대신 ‘측근’을, 소통 대신 ‘불통’을, 국민행복 대신 ‘권력옹위’를 선택했다. 국민은 점점 높아지는 ‘친박산성’에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인사는 국정과제 실현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 인사 어디서도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도, 두 국민 정치로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통합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틈만 나면 경제 활성화를 국정 운영 최우선에 두겠다고 했지만, 정작 경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불러들였다. 대통령의 경제 활성화는 실천 의지 없는 구호요, 세월호 진상을 침몰시키고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기 위한 방패에 불과했다는 것인가. 더구나 신임 비서실장은 97년 대선 북풍공작 연루 의혹과 2002년 대선 차떼기 전력의 소유자다. 대통령의 법과 원칙은 정치적 반대자를 향한 창에 불과했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고 고단한 국민의 삶이 달라질 수는 없다. 대통령 인사를 보며 정보정치, 공작정치 우려는 물론이고, 경제 활성화도, 국민통합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심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각과 청와대를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전락시켜서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 인적 쇄신과 국정개혁을 요구한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한다.
■ 박근혜 대통령, 국정원 개혁 의지 없다
국정원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열망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정원 개혁’은 해를 두 번 넘겨도 찾아볼 수 없고, 대통령은 국정원을 개혁할 의지가 없다는 것만 드러나고 있다. 참담한 현실이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는 연이은 ‘셀프개혁’ 면죄부로 국정원을 감쌌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 이번에는 국정원 개혁을 책임질 적임자라며 임명한 이병기 원장을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급한 불 끄자고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애초 국정원 개혁에는 뜻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호 전 안기부 2차장을 국정원장에 내정함으로써 국정원 개혁 약속은 허언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 내정자는 그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극우적 이념의 편협함과 정치 지향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다.
우선 이 내정자는 정치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칼럼을 게재했고,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문화일보 2012. 11.30, 2013.1.4.)
또한 선거 개입 사실이 드러난 후에는 국정원 개혁 요구를 ‘백해무익한 자해행위’로 폄하하고, 노골적으로 국정원 개혁에 반대했다. (문화일보, 2013. 10. 17)
뿐만 아니라, 이 내정자는 냉전시대 대결적 대북관을 갖고 있다. 좌파정부, 종북세력 운운하며 햇볕정책을 ‘북한의 적화책동을 돕는 이적행위’라고 주장(월간조선, 2012. 5) 하는가 하면,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은 마땅히 한국판 시오니즘이 돼야 한다’(문화일보, 2014. 1. 2)는 위험천만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통일 대박’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쯤 되면 이 내정자는 국정원 개혁의 수장은커녕 후퇴의 선봉대가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더 위험한 국정원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의 의지박약이 선거개입과 정치공작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는 국정원 개혁의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눈 가리고 아웅’하며 회피해온 국정원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국민의 요구,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치졸하고 추악한 정치공작의 진상을 밝히라는 국민의 명령을 엄중히 받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