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의원과 정의당은 모든 테러행위에 대하여 반대합니다. 또한 테러행위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들이 마련된다면, 그것이 정부 여당에 의해서 제안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찬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제안하는 테러방지법은 국가정보원의 권한만 확대할 뿐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테러방지기구와 대책을 마련하여 운영 중에 있습니다. 대통령 훈령으로 제정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라 대통령 소속으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하는 국가테러대책회의가 1982년부터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등 11개 부처 장관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등 대테러 관련 정부기관이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르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 국무총리는 결정사항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시행사항을 총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총리는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의 의장인 사실도 모르고 있고, 정기적으로 소집, 주재해야 할 회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법규에 따라 이미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임무조차 수행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 떼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에 도청, 감청권, 개인정보와 위치추적권 뿐만 아니라 계좌열람 및 지급정지권까지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국가정보원의 권한 남용을 막을 강력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이나 각종 불법사찰에 개입한 국가정보원의 불법행위를 방지할 장치가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정보원은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정보원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국가정보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1명의 대테러 인권보호관을 두어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예방하겠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것입니다. 인원뿐만 아니라 자격과 권한에 대한 모든 것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어서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전락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제19대 국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료의원 여러분에게 몇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애국법’을 제정하여 테러리스트로 추정, 의심되는 외국인에 대하여 최장 60일간 구금하고, 통신감청은 최장 1년간, 감청대상을 모든 통신으로 확대하였습니다. 그런데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이 ‘애국법’이 정보기관에 의하여 얼마나 악용되었는지 폭로하였습니다. 그리고 미 연방 1심법원은 ‘애국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법률의 정당성,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제정된 법률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양심수와 희생자를 양산했던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의 긴급조치에 대하여 우리 헌법재판소도 위헌판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아직도 가시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잘못된 법률, 만들어지지 않아야 할 법률 때문에 피해자들에게는 잊지 못하고, 지워지지 못하고 남게 되는 ‘영원한 상처’인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지금 애플사의 아이폰의 잠금해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쟁점은 하나입니다. ‘정보기관의 수사 편의성과 시민의 자유’입니다. 테러방지법의 쟁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정부의 협조요청에 대하여 애플사의 팀 쿡 씨이오(CEO)는 아이폰의 잠금장치 해제 협조는 궁극적으로는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위협하여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할 것이기 때문에 협조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팀 쿡 씨이오(CEO)가 테러를 찬성하고, 테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에 무지해서 정부의 요청을 거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정보와 자유에 대한 침해를 넘어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사실상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판옵티콘의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검찰, 경찰, 정보기관의 효율성과 편의성만을 생각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게는 낯설고 듣기 싫은 이야기이겠지만, 우리는 애플의 이번 결정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미치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동료 국회의원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한 채 ‘위기’라고만 외치며, 테러방지법이 없어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하며 국회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민국 국회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 상 입법기관인 국회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지시와 눈치를 보며 춤을 추는 꼭두각시 국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강압에 의해 이제 테러방지법은 표결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은 정략적 판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따라 판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과오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류의 역사에 크나큰 피해와 상처를 남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책무입니다.
따라서 테러예방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의 권한만 강화하는 악법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다면, 제19대 국회는 대한민국의 역사,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제19대 국회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동료 의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