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일에서 60일 이내에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 토머스 밴달 주한 미8군 사령관이 민감한 시기에 미묘한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그가 한국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어제(6일) 한국의 주요 언론사 간부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북한이 30일에서 60일 이내에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조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통계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조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조만간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장난인가. 또 군 사령관이 “통계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상대의 의표를 찔러서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것이 군사적인 도발의 기본이라서 도발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에서 확률이나 통계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언론인들을 부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것은 한국인들의 귀에 들어가기를 바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아마 북한의 위협이 매우 크다는 점, 따라서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한 듯하다. 그 위협의 정도를 과장하기 위해 그는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문제는 이런 그의 발언이 한국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른바 모든 메이저 언론들은 그의 발언을 매우 비중 있게 재생산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는 북한 위협에 대한 강조가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때문에 특정 정치세력은 자기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왜곡해왔던 것이다. 더욱이 한국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인 미군이 북한 위협을 강조할 경우 그것이 한국 정치에 던지는 함의는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미8군 사령관은 그가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고 과장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터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듯이 미국은 우리나라 현 정부가 쉽게 무너져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사드배치 문제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실제로 미8군 사령관도 한국의 정치정세로 사드배치 시기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8군 사령관의 북한 도발 가능성 발언은 현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어 기존의 정책을 못박아두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미군이 기자회견, 기자간담회,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정치 지형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미군에게도 한국정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그들이 말하는 굳건한 한·미 동맹은 유지될 수 없다. 예전에 통했던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미군은 한국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그 어떠한 행위도 이제 그만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