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딕 더빈 상원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만약 한국이 사드 배치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에 필요한 예산 9.23억 달러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사드 찬성론자들은 이 외신을 근거로 사드 보고 누락에 대한 청와대의 조사를 안보 자해라는 식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딕 더빈 상원의원이 했다는 발언은 청와대가 주장하듯이 그 자체가 없었을 수 있고,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발언 내용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딕 더빈 상원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려면 사드 구입에 필요한 예산 9.23억 달러가 2018 회계연도 예산안에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2018년 국방획득예산 설명자료(2017.5.23.)에 따르면 미국의 2018년 사드 예산은 7.18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예산은 사드 구입 예산이 아니라 유지와 업데이트를 위한 목적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 사드 예산안에는 사드 구입 예산이 배정되어 있지 않다<첨부자료 7p>. 배정이 되어 있지 않은 예산을 어떻게 전용한다는 것인가?
더욱이 이번에 미군이 한국에 들여온 사드는 기존에 미국 본토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옮겨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과거에 이미 국방예산으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던 사드를 단지 장소만 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드 구입 예산이 새롭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딕 더빈은 마치 미국이 새롭게 예산을 편성해서 사드를 구입한 다음 그것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것처럼 얘기한다. 그의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딕 더빈이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그는 사드가 한국민에게 선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는 사드 예산 전용 발언을 통해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국의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문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철저하게 자국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외국 정치인의 발언을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진질인 양 받아들여 사드 찬성 논거로 활용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의 행태이다.
딕 더빈은 미국 사람이고 미국 사람 입장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이 그대로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인의 입장이 곧 한국인의 입장은 아니다. 정 반대일 수도 있다.